(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최근 한국인 대학생 고문 살해 사건을 계기로 캄보디아 현지의 한국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현지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다. 
그러자 범죄단지에 있던 조직원들이 너도나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범죄단지인 시아누크빌 등에서는 수백 명의 조직원 탈출 행렬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범죄조직원들의 탈출이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와해나 '스캠' 범죄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범죄 형태의 시작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일 수도 있으며, 아시아 범죄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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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들이 10월18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감금 대신 수익 나누는 공생관계 전환 예상
먼저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캄보디아는 범죄 지형의 지각변동이 주식투자실패담
예상된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배후에는 중국 흑사회가 있다. 흑사회는 중국 대륙을 비롯해 대만, 홍콩 등 중화권 범죄조직의 총칭이다. 이 중 가장 세력이 큰 것이 세계 최대 규모의 범죄단체이자 국제사회에서 악명 높은 '삼합회'다. 즉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은 중국 흑사회 분파들이라고 보면 된다. 오래전부터 중국 범죄조직들은 캄보디아 권력자들의 후원자를황금성어플
자처했다. 유력 정치인 등 권력층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이권을 챙기며 배를 불렸다. 경찰 등 공권력에도 뇌물을 제공하며 비호를 받았다. 
중국 범죄조직들이 곳곳에 범죄단지를 만들어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스캠 범죄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권력층과 경찰 등이 뒤를 봐주고 있어 가능했다. 캄보디아에서 대규모 범죄단지를 운영해 바다이야기시즌7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진 프린스그룹 천즈 회장(38)이 캄보디아 최고 실세인 훈센 전 총리의 고문을 맡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뿌리 깊은 유착은 권력자와 범죄조직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먹이사슬이자 공생관계가 됐다. 때문에 이번 캄보디아의 단속은 국제사회 비난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단속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캄보디아에서헤모스
의 스캠 범죄 형태는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기존의 대규모 범죄단지에서 향후엔 소규모 형태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거점화하지 않으면서 단속에 대비해 신속하게 이동하는 떴다방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사무실·오피스텔·호텔 등에 점조직으로 퍼져 사기행각을 벌이게 된다. 한국에서 집창촌을 폐쇄하자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으로 옮겨 변종 성매매로 이어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과 같다. 지금보다 단속이 더욱 어려워지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조직원을 모집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범죄조직들은 취업사기로 유인해 감금한 후 폭력과 고문 등 강압적 수단으로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공멸한다는 것을 충분히 학습했다. 향후에는 '고수익'을 내세워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실제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공생 형태가 유력하다.  
캄보디아에 감금됐던 한국인 피해자 대다수는 사기 범죄인 줄 알면서도 큰돈을 주거나 벌 수 있다는 유혹에 현혹돼 실제 사기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들이다. 만약 범죄조직과 조직원들이 '공생관계'로 바뀔 경우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로 물밀 듯이 밀려들 수도 있다. 그러면 엄청난 규모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스캠 범죄의 거점도 캄보디아에서 인접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 후 범죄조직원들이 향한 곳은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댄 태국·미얀마·라오스 등 인접 국가들이다. 일부 국경지대에는 어느 나라의 공권력도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가 있다. 특히 미얀마 북부 지역의 '캠프'라고 불리는 곳은 중국계 범죄조직과 현지 군인들이 결탁해 운영하는 거대 불법 사이버 범죄단지가 있다.
최근에는 취업사기에 유인된 벨라루스 20대 여성 모델이 이곳으로 끌려가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긴 뒤 폭행과 협박을 당하며 강제로 사이버 범죄에 가담했고, 목표 수익을 채우지 못하자 장기가 적출된 후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국내 범죄 지형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범죄조직과 국내 범죄조직의 결탁이 더욱더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범죄조직들이 국내에 진출한 지는 이미 오래다. 2000년대부터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인(조선족 포함)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폭력조직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범죄단지에서 체포된 중국인들 ⓒ캄보디아-차이나 타임스 캡처


전문 돈세탁 조직원으로 활동한 국내 조폭
대표적인 것이 흑사회 분파들인 '흑룡강파'와 '연변 흑사파'다. 이들은 양대 패밀리를 형성하고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다. 2002년 5월에는 서울 남구로역에서 흑사회 분파끼리 패싸움을 벌이다 상대 조직원이 살해되기도 했다. 2006년 12월에는 흑룡강파 조직원이 가리봉동 호프집에서 연변 흑사파 두목을 칼로 찔렀으나 미수에 그쳐 살인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연변 흑사파도 즉각 보복에 나서는 등 흑룡강파와 연변 흑사파의 보복 악순환은 계속됐다.
이들 세력이 커지자 서울경찰청은 2007년 4월 광역수사대를 동원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 이때의 일화가 영화 《범죄도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후 중국 범죄조직들은 폭력을 동원한 세력 다툼 대신 소규모 단위로 유흥업소 관리, 공사현장 이권 개입, 노래방·마작판 운영, 중국 동포들의 체불 임금을 받아주는 청부업 등에 나서며 기업형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지금은 본토나 해외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과 연결해 보이스피싱 등 사이버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범죄조직과의 결탁이다. 국내 폭력조직의 지형도가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범죄 형태도 바뀌었다. 이전 조폭처럼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 오락장 등을 무력으로 빼앗으려는 영역 싸움에 나서지 않고, 야구방망이·각목·회칼로 무장하고 상대 조직을 공격하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전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삼지도 않는다. 
이른바 'MZ 조폭'들은 의리보다는 돈을 중시한다. SNS 세대답게 신규 조직원들을 SNS를 통해 포섭하고, 단체대화방을 개설해 수시로 연락하고, 범죄 정보도 수시로 주고받는다. MZ 조폭들의 사업 영역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범죄 수법은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도박 사이트 운영, 보이스피싱, 가상화폐 조작, 코인리딩방 개설, 불법사채, 대포통장 유통 등 꾸준히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국 범죄조직과의 유착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이버 범죄에 필요한 한국인 조직원 모집, 대포통장, 범죄자금 인출, 자금세탁 등을 대행해 주고 수익을 챙겨왔다. 캄보디아에서 숨진 대학생 박아무개씨(22)를 유인해 현지로 보낸 대학 선배도 대포통장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울산경찰청은 최근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사기로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대신 세탁해준 '전문 돈세탁 조직'을 무더기로 검거했는데, 알고 보니 전남 지역 폭력조직인 '백학파' 조직원들이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세탁한 금액은 수천억원대로 추정되고 있으며, 약 10%의 수수료를 챙긴 뒤 캄보디아 현지 중국 조직에 송금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사례는 중국 사기조직이 한국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면 한국 조직폭력배가 운영하는 세탁조직이 이를 가상화폐로 바꿔주는 방식인데,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스캠 범죄 국제 생태계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MZ 조폭들이 선호하는 범죄 형태와 맞아떨어지면서 향후에도 이런 식의 결탁과 유착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범죄조직들은 중국 범죄조직과의 결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동남아 등 해외 진출을 모색해 왔다. 성남 국제마피아의 경우 조직원인 김형진이 태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방콕 등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김씨는 국내에서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 등을 조달했고, 2015년 6월에는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속아 현지에 온 임동준씨(31)를 폭행해 살해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입주해 한국인을 상대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 범죄를 주도한 강아무개씨(31)의 경우 자신의 아내와 함께 조직을 총괄하며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들 부부는 현지 경찰에 체포됐으나 아직까지 송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캄보디아에서 범죄 혐의로 구금됐다 송환된 64명 중 상당수는 국내 범죄조직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MZ 조폭들의 야유회 단체사진 ⓒ서울경찰청 제공


사이버 범죄 특화한 새로운 범죄단체도 등장
지난해 기준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만 놓고 보면 발생 건수는 2만839건에 달했고, 피해액은 8545억원이다. 2021년 7744억원을 뛰어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제가 침체 상황인데도 사이버 사기 범죄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사이버 사기조직이 막대한 범죄수익을 벌어들이자 새로운 범죄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포통장 모집조직' '범죄자금 세탁조직', '범죄조직원 모집조직' 등 사이버 범죄에 특화된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현혹된 자발적 범죄조직 가입자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이미 구직이나 아르바이트 사이트, 온라인 카페, 텔레그램 등 SNS에는 청년들을 유혹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범죄조직끼리 알바 조직원 확보에 경쟁이 붙으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6월 경남경찰청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현금 1170만원을 건네받아 범죄조직에 전달하려던 30대 남성을 검거했는데, 그는 유명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물건을 받아오면 고액을 준다'는 아르바이트 광고에 속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8월 대전에서 붙잡힌 로맨스 스캠 조직의 인출책도 구직광고를 통해 범행에 가담한 20대였다. 그는 대덕구 법동에서 피해자에게 현금 1000만원을 건네받으려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한 40대 남성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범죄조직에서 활동하며 1400억원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가 범죄단체가입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중국 등 국제 범죄조직은 한국인을 사이버 범죄의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국내 범죄조직이 가세하고 청년들까지 범죄조직원으로 가입하는 추세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